1953 ~ 1970 · 종이 위의 법
전태일이 불을 붙인 근로기준법
근로기준법은 이미 1953년에 있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나기도 전, 법률 제286호로 제정된 이 법은 8시간 노동, 주휴, 해고의 제한, 미성년자 보호 같은 조항을 담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조문이 아니라 현실이었습니다. 1960년대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의 봉제공장에서는 열서너 살 여공들이 환기도 되지 않는 다락방에서 하루 열네 시간씩 재봉틀 앞에 앉아 있었고, 법에 적힌 8시간이라는 숫자는 그들에게 남의 나라 이야기였습니다.
스물두 살의 재단사 전태일은 이 간극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는 근로기준법 조문을 스스로 공부했고, 법이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관청과 언론에 알리려 했지만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1970년 11월 13일, 그는 근로기준법 법전을 손에 든 채 자기 몸에 불을 붙이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스물두 해의 삶이 그렇게 끝났습니다.
전태일의 죽음은 법을 새로 쓰지 않았습니다. 근로기준법의 조문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그 조문은 ‘살아 있는 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노동자들은 법이 자기 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했고, 대학생과 지식인들이 노동 문제로 눈을 돌렸으며, 여러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이 만들어졌습니다. 종이 위에만 있던 권리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의 관점에서 전태일 사건이 갖는 의미는 분명합니다. 법이 존재한다는 것과 법이 지켜진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지금도 근로기준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상당 부분 적용되지 않고, 임금체불과 장시간 노동은 매년 통계에 남습니다. 55년 전 한 청년이 던진 질문, “법은 누구를 위해 있는가”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태일 · 위키백과“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